오늘도 욱! 하셨나요? 

  • 남보라  2020.02.11

감정조절의 원리 : 내면에 집중하고 알아차리기

이를 재우다가, 또는 수십번의 “하지 말라”는 잔소리 끝에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발성은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모습이다. 그렇다. 육아를 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호소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아이에게 버럭 하는 분노 조절 문제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인데 나도 모르게 ‘욱!’ 하고 나면 곧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분노를 터뜨린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욱!’ 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 느꼈던 감정을 살펴보면, 사실 그 안에는 화뿐만 아니라, 걱정과 불안, 조바심, 초조함, 야속함, 원망 등의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다. 이런 감정들은 그 상황에서 동시에 일어나지만 그것을 즉각적으로 민감하고 섬세하게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바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에 쓸 에너지를 감정을 억누르는 데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건 나의 감정 따위가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제한 시간 내에 해 내는 것이다. 평일 아침에도 주말 아침 같은 모드로 천하태평인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해야 한다면 출발 시간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엄마는 경주마가 된다. 오늘은 회사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절대 지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이의 준비 속도를 보니 분명 지각이다. 걱정과 불안이 밀려오고 아이가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아침을 거르고 유치원에 보내자니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이렇게 바쁜 아침 엄마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지만 이것은 의식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이내 봉인된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촌각을 다투는 지금, 감정과 생각은 방해가 될 뿐이다. 결국 시곗바늘이 정해진 시간을 가리키는 순간, 한참 전에 입에 넣은 밥을 여전히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아이를 목격한다. 그리고 엄마의 억눌렸던 감정은 ‘욱!’으로 터져 나온다.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오히려 더욱 강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터뜨리고 말았으니 허탈하다.

만약 그 상황에서 감정을 알아차리는데 에너지를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바쁘니까 감정과 생각은 무시하거나 억지로 억압하려고 애써 왔다면, 지금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려 보는 것이다. 감정을 인식하고 알아차린다는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에게 어떤 욕구가 있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래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알아차리고 나면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된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감정 조절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메타 인지(meta cogni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메타인지는 1976년 발달 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Flavell)에 의해 소개된 개념으로 지식이나 사고 과정, 감정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메타인지적 자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은 메타인지적인 자각 수준이 낮은 편이며, 심리치료를 통해 메타인지적인 자각 수준이 높아진 우울증 환자들은 재발률이 현저하게 낮았다고 한다.

메타인지적 자각으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억압 끝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보다 “엄마가 지각할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라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이와 싸워서 눈물바람으로 등원시킬 일도 없고 분노를 터뜨린 후에 뒤따르는 자책과 미안함이라는 부수적인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훈련하고 연습하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진다. 일기를 쓰거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을 떠올려 보고, 그때 느껴진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본다. 감정이 얼마나 큰 강도로 느껴졌는지 점수를 매겨볼 수도 있다. ‘0’점이 매우 편안한 수준이라면, ’10’점은 내가 느낄 수 있는 한 최대의 강도로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정 일기를 통해 메타인지적 자각을 확장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마음 챙김 명상을 하는 것인데,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통찰력과 민감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마음 챙김 명상은 언제 어디에서나 5분 정도 짧은 시간만 할애하는 것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다만, 처음 접하는 과정에서는 즉각적인 효과를 느끼기 어려워 지속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습관화가 되고 익숙해 질 때까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원하는 건 무엇인지 매 순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중심을 잃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욱!’으로 뭉뚱그려진 감정을 찬찬히 살펴보고, 뒤섞인 진짜 감정들에 각각 이름을 붙여보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억압하거나 왜곡되지 않은 나의 감정과 마주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감정을 길들이는 시작이 된다.

이음심리상담연구소 부소장남보라